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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미손 파초(芭蕉)의 마을

목공의 마을에서 파초의 마을로

파초포(芭蕉布)의 제조법은, 옷감을 짜기 전에 실패를 정련시키는 “니가시(煮綛)”와, 키죠카와 같이 옷감을 만들고 나서 정련시키는 두 가지 종류로 크게 구분한다.

전자는 주로 왕조시대에 사족의 의상을 짜는데 쓰이고 있었지만, 후자는 전쟁 이전까지 서민의 여름옷으로 오키나와 각지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키죠카에서도 예로부터 생산되고 있었던 듯 하지만, 1893년(메이지 26년)에 오키나와를 방문한 히로사키한(弘前藩) 출신의 관리 사사모리 기스케(笹森儀助)의 저서 “남섬 탐구” 이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여기에는 오기미 지방의 상품으로 무명 비백 무늬와 더불어 파초포(감색 천 561필, 흰색 천 249필)이 적혀 있다. 다만, 당시에는 대부분이 가정에서 사용되는데 그쳐서, 마을 밖으로 출하되는 경우는 적었다고 한다.

그 후, 1895년(메이지 28년)에 나카하라 나베(仲原ナベ)라는 여성이, 그때까지 무지나 줄무늬가 주류였던 파초포에 처음으로 비백 무늬를 채용. 그리고, 1905년(메이지 38년)에는 타카바타(高機)가 도입된 것 외에도 타이라 토시코(平良敏子)의 조부인 타이라 신쇼우(平良真祥)가 자신의 딸에게 하나우이(花織)와 로오리(絽織) 강습을 받게 하는 등, 기술 혁신과 생산 확대의 기운이 고조되어 갔다.

인간 문화재 타이라 토시코(平良敏子)의 분투

타이라 신지(平良真次)의 딸 토시코는 전쟁 중에 “여자 정신대”의 일원으로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쿠라시키 방적 북방공장에 취직한다. 여기에서 그녀를 비롯한 키죠카 출신 4명은 오하라 소이치로(大原総一郎) 사장의 권유로 前 쿠라시키 민예관 관장이었던 도노무라 키치노스케(外村吉之介)에게 사사한다. 직물과 염색의 기본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민예 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아 1946년(쇼와 21년) 말에 귀향한다.

키죠카로 돌아온 토시코는 파초포를 부흥시키기로 결심하고, 전쟁의 미망인들에게 함께 생산할 것을 호소하지만, 그 시절은 군의 작업이 전성기이던 시절. 수요가 없어진 파초포를 생업으로 이어나갈 수는 없는 고단한 시대가 계속된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1951년(쇼와 26년)에 군도 정부 주최의 산업진흥공진회에서 그녀의 작품이 1등을 수상한다. 그리고, 1954년(쇼와 29년)에 섬 생산 애용 운동주간에서도 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오키展”에 공예 부문이 개설되어, 그녀는 여기에도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하여 “키죠카의 파초포”는 뛰어난 공예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그녀는 인근의 노하(饒波) 지구에서 재료를 대량으로 구입하고 키죠카의 여성들을 옷감 짜는 일로 고용하여, 작업의 집중과 효율성을 추진함과 동시에, 새로운 제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등, 파초포를 “산업”의 궤도에 올려 놓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시의 인기 상품으로는 미국인들을 위한 테이블 매트나 테이블 센터, 쿠션, 본토인들을 위한 방석, 허리띠 등이 있다.

특히 테이블 매트는 파초의 원사처럼 키죠카 특산인 등심초를 번갈아 짠 아이디어 상품으로, 오키나와현 내의 특산품 전시회에서 잘 팔려서 전성기에는 100필 가까이 짠 해도 있었다고 한다.

오키나와가 자랑하는 전통 공예로

1972년(쇼와 47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파초포는 오키나와현의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타이라 토시코는 그 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2년 후에는 국가 지정 중요 무형 문화재로서, 그녀를 대표로 하는 “키죠카의 파초포 보존회”가 기술 보유단체로 인정을 받았다.

이렇게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전통 공예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본토에서의 주문도 증가하여 매입 가격도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1978년(쇼와 53년)에는 개별 제품의 품질 격차를 없애기 위해 규격을 통일하고, 증지를 부착하기 시작한다.

기술자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으로 인해 이때부터 생산량은 조금씩 감소하지만, 품질과 사회적 평가는 점점 높아져서1981년(쇼와 56년)에는 폴라 전통문화 진흥재단으로부터 제1회 전통문화 폴라 대상을 수여하고, 기록 영화 “파초포를 짜는 여인들”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현재 촌립 파초포회관에서 볼 수 있다.

1984년(쇼와 59년)에는 일본 통산성의 “전통 공예” 지정을 받기 위해 키죠카 파초포 협동조합을 설립. 2년 후, 촌립 파초포회관이 완성되고, 후계자 육성 사업도 시작되었다. 이 회관은 생산 거점인 동시에, 연간 2만 수천명이 방문하는 파초포의 PR 시설이기도 하다.

실 파초의 용도는 파초포에 그치지 않는다. “우바사가라(껍질)”은 예전부터 파초 종이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부케나 책갈피 등, 종이 공예의 소재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또한, 실로 만들 수 없는 겉껍질의 섬유는 “시사우”로 불리며, 오키나와 각지의 사자춤에서 사자의 털로 사용되기 위해 매년 대량의 주문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실 삶기에 사용되고 남은 목탄은 도자기의 유약으로 사용되는 등, 그 파급 효과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현재 키죠카의 연간 생산량은 약 250필. 후계자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천짜기 기술자의 고령화 등 불안 요소는 많지만, 많은 분들의 이해와 지원을 얻으면서, 오기미뿐만 아니라 오키나와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전통 공예인 키죠카의 파초포를 앞으로도 지키며 육성해 나가고자 한다.

관련 링크

芭蕉布 하늘을 올려봐

喜如嘉의 芭蕉布에 대한 블로그. 전시회 및 일상 활동에 대한보고.

파초포회관

오기미 촌립 파초포회관 (1986년 완성)

오기미 촌립 파초포회관은 지역 산업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오키나와현의 지원을 받아 1986년에 오기미손이 설립했습니다. 현재는 키죠카 파초포사업 협동조합에 회관의 관리를 위탁하고 있습니다. 회관에서는 현재 경제산업장관이 지정한 전통 공예품 “키죠카의 파초포”와, 문부과학장관이 지정한 중요 무형 문화재 “키죠카의 파초포”에 대한 후계자 육성사업을 국가, 지역, 마을의 지원을 받아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언제나 파초포 제품의 판매 및 파초포의 제조 공정이 담긴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2층 작업장에서는 파초포 전통 공예 종사자의 연수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덧붙여, 종사자들의 작업에 방해(촬영이나 말을 거는 행위 등)가 되지 않도록, 허가를 받고 견학해 주십시오.

大宜味村立芭蕉布会館
문의
〒 905-1303 오키나와현 오기미손 키죠카 454번지
전화번호 0980-44-3033
개관일
일요일, 백중(음역 7월 15일), 연말 연시(12월 29일부터 1월 3일까지)를 제외한 날
견학이 가능한 시간
여름철 (4월 ~ 10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30분
겨울철 (11월 ~ 3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오기미 촌립 파초포회관 견학과 후계자 사업에 관한 문의는, 오기미 촌립 파초포회관으로 문의해 주세요.

오기미손 상공회 20주년 기념 사업으로, 오키나와현 출신의 시인
야마노구치 바쿠(山之口貘)의 “파초포”의 비석 건립 (1998년)

파초포(芭蕉布)/야마노구치 바쿠(山之口貘)

상경한 후로 이러니저러니
십 년이라는 세월만 흐르고, 여름이었다
먼 곳의 어머니가 파초포를 보내 주셨다
파초포는 어머니가 직접 손으로 짜서
베틀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거나
더울 때는 파초포에서 자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말을 생각하며
오키나와의 냄새를 그리워했었지
파초포는 금새 바느질을 하여
내 옷이 되었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입어 보지 않는 동안
이십 년이나 지나 오늘에 이른 것이다
물론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입지 않고 아껴 둔 것도 아니다
찾아왔구나 하고 생각하면
금새 다시 맡기는 것처럼
전당포를 드나드느라
입을 틈이 없는 것이다

「芭蕉布」の碑建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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